저절로 오 하느님!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우리 선조들의 운명이 담겨 있는 글입니다.
기록이라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작가. 확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을 소설이라는 허구로도 표현하길 꺼려했던 작가의 정신이 이 작품에도 그대로 드러나있습니다. 한장의 사진!
이 사진은 자신의 관등성명과 계급, 부대 이름, 국적을 말해야하는 차례의 독일군 포로. 노란색의 피부를 보고 놀란 미국 병사의 호기심 어린 카메라를 애써 피한 부러 치켜뜬 눈.
그 뒤에서는 그 동양인처럼 무장해제 당한 독일군 포로가 유타해변에서 왜소한 동방대대 소속 동양인 병사의 뒤통수를 쏘아보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진의 하단에는 포로의 인적사항을 기재하는 미군 병사가 있습니다.
동양인 포로는 독일 나치의 복장을 하고 있어 히틀러가 유대인도 인종차별하면서 동양인은 어떻게라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2차 대전 동맹국인 일본의 병사인가보다 생각하는 듯한 미군 병사의 표정을 담은 한장의 사진과 스티븐 앰브르스가 쓴 디데이에서 언급한 노르망디 조선인의 이야기가 이 책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사진 속의 독일군 포로 신길만은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이었습니다.
나이 스물이 되도록 장가를 들지 않았던 늙디 늙은 총각 아저씨였습니다.(지금은 학생이지만 당시에는.)
대부분의 친구들은 장가들어 한 둘의 아이를 둔 나이였지만, 그는 내 땅을 갖겠다는 일념으로 죽도록 일만 한다.
그러다가 면서기를 시켜준다는 이장의 말에 일본군으로 지원을 하였습니다.
가난하지 않았다면, 지주의 아들이었다면! 피해갈 수 있는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일본군에 소속되어 만주 지역에 배치된 그는 어지럼증으로 졸도할 듯 넓은 지평선을 보며 한 뼘 땅을 갖고 싶어 조국을 떠나 만주 땅으로 이주해온 동포들의 애환과 희망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독일과 전투한 모스크바 전투에 참가하여 이번에는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일본군에 있을 때보다 소련군이 되었을 때 배불리 먹었던 그들은 독일군의 포로가 되면서 가장 처절한 비인간적인 것을 겪었습니다. 발가벗겨져 모든 걸 검사받던 그들은 인간은 옷을 입어야만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의 모습을 갖춘다는 것을 여실히보여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살기 위해 이번에는 독일군 병사가되었습니다. 강제노역을 하던 신길만 일행은 동방대대에 소속되어 연합국의 상륙이 에상되는 노르망디 해변에서 모래사장에 쇠기둥을 박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 대비에도 불구하고 연합국이 작전을 개시하였을 때, 그들은 또다시 미군의 포로가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국적이 소련이 아니라 조선임을 알리기 위해, 그리고 조선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손가락을 물어뜯어 피로써 글을 씁니다. 우리는 조선 사람이라고.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국적 변경이 아니라 손목에 쇠고랑이 채워진 채로 영창에 갇힌 것입니다.
삼개월 후 출소하니 소련군이 그들을 맞이하였습니다. 미국이 소련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소련의 포로를 넘겨준 것입니다. 배를 타고 도착한 그들을 태우고 가던 트럭이 휴식을 알리며 멈춰서자, 그들은 용변을 보기 위해 숲속으로 걸어갔고 뒤이은 기관청 소리.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고국으로 돌아 가 면서기를 하면서 부모님 모시고 마누라 자식들과 함께 알콩달콩 살고 싶었던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이렇게 죽임을 당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