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줄거리는 공부를 싫어하는 주인공 영욱이와 표시한-할아버지 성함- 할아버지의 마지막 순간들의 이야기를 나타내는 책이다. 영욱이의 아빠는 빵집을 하고 계신다. 그리고 영욱이에게는 엄하신 분이다.
그래서 영욱이는 아빠보다 표시한 할아버지를 더 좋아라한다. 할아버지는 많은 재산을 물려받으셨다.
하지만 사업 실패와 이혼 후에 겪은 사기 등을 겪게 되고 그 후 빚을 지게 되었다.
그리고 영욱이의 아빠가 돈을 다 갚아주고 집에 같이 살게 된다. 영욱이와 할아버지는 한 방에서 같이 산다.
하지만 표시한 할아버지는 영욱이의 아버지인 즉 자신의 아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신다.
할아버지는 사우나에 가는 것과 박물관에 가도 그것들을 모두 이벤트라고 부른다.
그리고 노인정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에게는 휴대폰 기능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는 분이시다.
어느 날 항상 할아버지가 드시던 활명수 세병을 사달라는 문자를 보고 같은 반인
보라의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보람약국에서 한병을 사고 집에 간다.
하지만 그걸 드시고나서 할아버지는 조절이 되지를 않아서 화장실에서 오줌을 바지에 싸고 만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그날 밤. 돌아가시고. 영욱이네는 장례식장에 가게 된다.
난 이 책을 읽고나서 한참을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생각에 잠기었었다. 영욱이가 장례식을
관찰하던 부분에서 공감가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숨죽여가며 진지하게 읽었던 것 같다.
읽는 내내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이 났고 할머니가 살면서 나에게 해주셨떤 것을 돌이켜보았다.
문자가 개발되었을 무렵 우리 할머니는 그런 것을 잘 알지 못했었다.
이 책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이고 살아계실 때에 누구든지 간에 잘해주어야 된다는 사실이 담긴 교훈이 있는 책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 이해를 갖게 해 준 책이었다. 어쩌면 그 경계는 불확실할지도 모르겠지만.
내심 영욱이라는 아이가 부러웠다. 할아버지랑 같이 숙제도 하고 나도 이 담에 할머니가 되면 저 주인공의 아빠랑 할아버지의 관계처럼 서먹한 사이를 안 만들고 싶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영욱이한테 했던 것처럼.
손자 손녀들한테도 잘해주어야하겠다. 우리는 이따끔 너무나도 무거운 것을 가볍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가장 큰 예는 죽음이라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 너나나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들 숙연해져야한다.
그건 불변의 진리이고 또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자로써의 도리이다.
하지만 요즘은 죽음을 흥밋거리 오락거리 이야깃거리 등등으로 취급한다.
과연 자신들의 죽음이 그렇게 취급이 되어진다고하면 그들은 즐거울까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마지막 이벤트, 이벤트. 이벤트라는 것은 어쩌면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기 문에
부치는 이름일 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아가는 이 모든 나날들이 좀 더 특별하고 의미있는 날이었으면
하는 그 간절한 바람에서 그렇게 이벤트라는 말이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죽었다, 라는 책도 그러한 맥락에서 아주 내용이 유사하다.
언제 내가 죽을지 모르니 이 순간 순간이 모두 의미있고 뜻 깊고 후회가 없는 삶이 되었으면 하는 그 바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