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팝아트계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는 앤디 워홀에 대해서 포스팅 해 보려고 합니다^^
미술에 대해서 전혀 무지한 사람이라고 해도 앤디 워홀이라는 이름 혹은 그가 그린 마를린 먼로의
그림을 보면 다들 "아~"하고 무릎을 치실 텐데요. 우리 모두가 그의 그림에 익숙한 만큼
세계에서도 그는 각국의 미술 교과서에도 그의 작품을 다룰 정도로 아주 유명한 팝아트계의 거장이라고
할 수있답니다.그럼 본격적으로 그에 대해 파고 들어 보실까요
그는 1928년 8월 6일 미국에서 이민자의 아들로 출생하여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뉴욕에서 무수히 많은 창작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 하고 초기 그의 작품은 대중과 평론가들에게
번번히 퇴짜를 맞았다고 합니다.그 당시에는 상업적인 면모를 최대한 배제한작품만을 취급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앤디 워홀 같이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엄청난 작품 수를 자랑하는 앤디 워홀을
순수 미술계에서는 그를 받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순수미술계에서 거절당한 앤디 워홀은 고리타분한 순수미술에 반기를 들고
팝아트계의 거장이 되었습니다. 위의 마를린 먼로와 같이 당대 최고의
정치인이나연예인들을그려주고 돈을 받기도 하고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까지 만들어
질 정도로 그는 그 시절 살아있는 미술계의 역사였습니다.
미술계에 새로운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
급속도로 도시화되고 상업화 되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자신의 캔버스 안에 데려온
그의 작품은 상업성과 일회성이 다분한 작품들이었습니다.그런 이유로 그를 평할 때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의 벽을 허물었던 장본인이라고도 평하곤 합니다.
많은 위대한 예술가들이 살아서는 빈곤한 삶을 살고 사후에 재평가 되는 일이 많은데
앤디 워홀은 살아서도 작품이 엄청난 가치가 있음을 평가받았고 사후에도 그의 위대한 업적을
칭송받는 피카소와 같은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위의 이 수프 캔은 그가 대중과 평론가로부터 아직 그렇다할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지 못했을때 돈이 없어 이 수프 캔으로 연명했을 때를 떠올리며 그렸던 캔이라고
합니다.비록 앤디 워홀은 1987년 2월 22일 담낭 수술 후에 숨을 거두었지만
그의 작품과 그가 미술계에 불어일으킨 새로운 바람은 아직까지도 팝아트와 예술을 하는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답니다.그럼 여기서 오늘 포스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