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가 오늘 소개해 드릴 인물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조선의 왕인 세종대왕인데요.
세종대왕은 어질고 재능이 많은 성군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대종의 뒤를 이어 조선의 4대 임금이 된
임금 세종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종은 33년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바쁜 정무에 많이 시달렸다고 하는데요,
새벽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침 일찍 일어나 정무를 보았고,
밤에는 학문까지 익혔으니 심신이 무척 고달팠을 것 같은데요.
그러나 세종은 이런 생활을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고
3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꾸준히 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인지 50살이 넘어서면서 잔병치레가 많았다고합니다.
세종은 조선의 3대 임금이었던 태종의 셋째아들이었는데요,
왜 태종은 셋째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을까요~
테종은 어린 시절부터 세종의 총명함과 근면함,
자애로움을 보았기에 조선 왕조의 수성을 맡기려했다고 합니다.
태종은 왕권의 확립 등으로 수성을 도모했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았는데,
그 수성의 마무리를 자신의 셋째 아들에게 맡기려 했는데요,
태종의 마음을 간파한 형들이 물러남으로 세종은 왕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저는 세종하면 한글창제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요,
세종은 정치와 학문에도 위민과 창의를 유감없이 발휘를 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백성들이 자신의 뜻을 문자로 표현할 줄 모르느 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겨서 훈민정음을 창제했는데요,
어려운 한문은 배우고도 자신의 뜻을 마음대로 표현 할 수 없었고,
선비들은 한문으로 축문이나 혼서, 편지를 쓰며
한문을 모르는 백성들에게 거들먹거렸다고 합니다.
이러한 환경을 세종은 바꾸려고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 하는데요.
또한 우리의 농사 실정에 맞지 않았던 농사법을 고쳐서 농사직설을 짓게하고,
여러 천문기기와 과학기술을 개발하게 했으며,
백성들의 윤리의식을 넓히기 위해 삼강행실도를 간행하기도 했는데요.
또, 집현전을 설치해 고금의 서적을 수장하고 학자들을 모았으며,
넉넉하게 녹봉을 주어 독서와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했는데요.
또한 우리의 농사 실정에 맞지 않았던 농사법을 고쳐서 농사직설을 짓게하고,
여러 천문기기와 과학기술을 개발하게 했으며,
백성들의 윤리의식을 넓히기 위해 삼강행실도를 간행하기도 했는데요.
또, 집현전을 설치해 고금의 서적을 수장하고 학자들을 모았으며,
넉넉하게 녹봉을 주어 독서와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했습니다.
세종은 장영실같이 낮은 신분의 인물이라도 재주가 뛰어나면 높은 벼슬을 주어
등용했으며, 낮은 벼슬아치 출신의 청문학자들에게는 서울 주변에 자리를 주어
연구와 관찰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거 세종은 외교에도 탁월한 솜씨를 보여 나라에 많은 이익을 챙겼는데요,
대표적인 예로 유명한 인삼로비얘기가 있는데요~
명나라에서 금, 은, 말을 요구하자 세종은 인삼로비를 벌였는데요,
면나라에서 오는 칙사나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은밀하게 로비를 해서
인삼의 호용성을 선전해서 명나라 사람들은 진시황이 구하려던 불사의 약이라며
세종의 로비에 넘어가 금, 은, 말을 인삼으로 바꾸기도 했는데요.
세종은 국가이익을 가져오게 한 뛰어난 외교수완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 말고도 굉장히 많은 업적을 쌓은 조선의 4대 임금 세종대왕인데요.
대왕이라는 단어도 부족할 만큼 정말 뛰어난 성군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