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추의 소년이라는 시에요. 희맑은 희맑은 하늘이었다. 소년은
졸고있었다. 열린 책장 위를 구름이 지나고 자꾸 지나가곤 하였다.
바람이 일다 사라지고 다시 일곤 하였다. 희맑은 희맑은 하늘이었다.
소년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음..이 시를 읽었을때 마치 소년이
마루에 누워 눈을 감고있는데 푸른 하늘에 바람이 살랑거리는 게 생각나요.
기형도의 내인생의 중지라는 시에요. 이제는 그대가 모르는 이야기를
하지요. 너무 오래되어 어슴프레 한 이야기. 미루나무 숲을 통과하면
새벽은 맑은 연못에 몇 방울 푸른 잉크를 떨어 뜨리고 들판에는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나그네가 있었지요. 생각이 많은 별들만 남아
있는 공중으로 올라가고 나무들은 얼마나 믿음직스럽던지..내 느린
걸음문에 몇번이나 앞서가다 되돌아 오던 착한 개들의 머리를 쓰다
듬으며 나는 나그네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았지요
한하운의 여인이라는 시에요. 눈 여겨 낯익은 듯한 여인 하나, 어깨
넓직한 사나이와 함꼐 나란히 아이를 거느리고 내 앞을 무심히 지나간다.
아무리 보아도 나이가 스무살 남짓한 저 여인은 뒷모양 걸음걸이
몸맵시 하며 틀립없는 저... 누구라 할까... 어쩌면 엷은 입술 혀 끝에
맴도는 이름이요 어쩌면 아슬사를 눈 감길듯 떠오르는 추억이요 옛날엔
아무렇게나 행복해 버렸나보지. 아니아니 정말로 이제금 행복해버렸나보지.
윤후명의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라는 시에요. 이제야 너의 마음
을 알 것 같다. 너무 늦었다. 그렇다고 울지는 않는다. 이미 잊힌 사람도
있는데 울지는 못한다. 지상의 내 발걸음, 어둡고 아직 눅은 땅 밟아
가듯이 늦은 마음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모두 떠나고 난 뒤면
등불마저 사위며 내 울음 대신할 것을 이제야 너의 마음에 전했다. 너무
늦었다. 컴컴한 산 고갯길에서 홀로
나태주의 추억이라는 시에요. 어디라 없이 문득 길 떠나고픈 마음이 있다.
누구라 없이 울컥 만나고픈 얼굴이 있다. 반드시 까닭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분명히 할 말이 있었던 것은 더욱 아니다. 푸른 풀밭이 자라서
가슴 속에 붉은 꽃들이 피어서 간절히 머리 조아려 그걸 한사코 보여
주고 싶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최승자의 근황이라는 시에요. 못살겠습니다 (실은 이만하면 잘 살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원한다면
죽여주십시오. 생각해보면,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게 내 죄이며 내 업입니다. 그 죄와 그 업때문에 지금
살아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잘 살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