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석 묘에 투입된 물량도 어마어마하고 당대 일류 예술가 기술자들이 총동원됐다고한다.
대리석에 꽃 등의 문양을 파고 그 홈에 색색의 보석과 준보석을 박아 공사를 했다.
비취는 중국이나 이집트에서, 루비는 미얀마에서, 진주는 다마스커스에서 가져왔다.
동원된 인부가 20만명 코끼리가 1천마리라고하니.
그 어마어마한 규모와 그 희생들이 정말로 대단했다.
건축하면 서양 건축이 최고라고들 한다.
하지만 이슬람 건축이 더 아름답고 더욱 정교하며 더욱 훌륭한 것 같다.
아마 이슬람 건축 양식이 서양 건축 발전에 큰 바탕이 됐으리라고 혼자 어림짐작 해본다.
사랑하는 왕비에 대한 그 그리움이 얼마나 컸는지도 난 이루 짐작할 수가 없다.
그의 그리움은 역사상 유례 없는 아름답고 화려한 대리석 무덤을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그것으로 인해 무굴제국을 파탄으로 이끌었다.
그는 남편으로써는 최고였으나 군주로써는 최악이었던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그랬었다면 진작에 봉기가 일어났을 것이다.
작은 나라에 그렇게나 큰 규모의 공사라니. 경복궁을 건설할 때도 그리 말이 많았는데.
그렇다고 우리 한국인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도인의 무딘 성정에 찬미를 하는 것 뿐이다.
타지마할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샤자한을 감옥살이를 하게 만들었다.
샤자한의 아들이 샤자한의 말년에 강 건너 타지마할이 마주 보이는 아그라 섬이라는 곳에 팔년간 갇혀 창밖으로만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생을 마감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토록 아름다운 궁전을 보면서도 감회가 씁쓸하다.
사람이 상상을 하고 실행을 하려고하면 못할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리석을 갈고 갈아 문살을 만들었을 그 노력들.
색돌로 문양을 맞추기 위해 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들.
하지만 이 궁전을 위해 얼마나 많은 땀과 피가 흘렸을까.
분명 이 성에서 죽어간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름도 없이 그저 노동자로만 남아 죽어갔을까.
샤자한 왕의 부귀영화와 권세도 한 순간 초로와 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언제 무슨일이 있었냐는 듯이 야무나 강변에는 안개만 자욱히 깔려있다.
한나절 내내 걸어다니며 돌아봤음에도 자꾸만 뒤를 돌아 한번만 더 보고 싶었다.
한낮에는 하얗고, 해질는 오렌지색, 달빛에는 청백색으로 빛나는 그 타지마할.
부디 그들이 저 먼 곳에서 다시 만나 행복하며 해로하길.